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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여풍’ 부는데 준비 안 된 군대
지속되는 군 성폭력, 조직 폐쇄성이 원인
독립적 민간 협력 고충처리제도 마련해야
 

삭인 여군이 과로사하고, 사관학교 여생도가 선임에게 성폭행 당하고, 상관의 성관계 요구에 자살까지… 여군들의 비극이 줄을 잇고 있다. 현재 60만 장병 중 여군은 8400여 명으로 매우 적은 숫자지만 군대는 더 이상 남성만의 성역이 아니다. 국방부는 2017년까지 여군을 1만1000여 명까지 늘릴 계획이고 추후 지속적으로 여성에게 문턱을 낮출 방침이다.

군에 대한 여성들의 의식도 변화가 크다. 육군·해군·공군 사관학교와 육군학생군사학교(ROTC)에 지원하는 여학생들의 경쟁률이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할 정도로 군대는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직장’이 됐다. 2014년 사관학교 여학생 경쟁률을 보면 공군사관학교는 약 72대 1, 해사는 65대 1, 육사는 43대 1이었고, 2010년 시작된 여학생 ROTC의 경쟁률도 7대 1을 상회하고 있다. 군의 과학화와 더불어 공공서비스 임무 확대 등으로 군의 역할이 확대됨에 따라 군의 여성인력 확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적이고 폐쇄적 군문화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큰 장벽으로 남아 있다. 기혼 여군들을 위한 모성보호와 일·가정 양립 제도나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성 군기’ 문제는 군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 10월 16일 20대 후반의 여군 대위 A씨가 강원도 화천군 모 부대 인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손인춘 의원(새누리당)은 충남 계룡대에서 10월 24일 열린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A대위의 유족으로부터 받은 유서 내용을 공개하며 숨진 A씨가 상관으로부터 지속적인 성관계 요구와 가혹행위를 당해왔다고 밝혔다. 가해자로 지목된 노모 소령은 구속 수사 중이다.

손 의원이 공개한 유서에 따르면 A대위는 지난 10개월간 상사인 노 소령으로부터 언어폭력과 성추행 등 ‘식사 한번 제대로 못 할 정도’의 괴롭힘을 당해왔다. “하룻밤 자고 나면 해결될 걸, 왜 군 생활을 어렵게 하느냐”는 협박 속에서 고통당하던 A대위는 죽음으로 피해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국정감사에서 손 의원이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한 후 여야 정치권은 모두 입을 모아 국방부에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방부는 10월 25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으로 성희롱예방교육을 실시했다. 지난 5월 육사 생도 성추행 사건 후에도 군은 재발 방지책을 내놓았지만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2012 여군 인권 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여군의 11.9%가 성희롱 피해를 직접 경험했고, 주변의 여군이 성희롱 피해를 겪는 것을 인지한 것은 41.3%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여군이 성폭력 피해에 직·간접으로 노출돼 있으면서도 별다른 대응을 못 하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성희롱과 성 군기 위반 행위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이후에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위계질서가 공고한 군의 폐쇄성과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여군들의 입을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대 내 고충처리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상담관이 군 지휘계통 내에 있어 비밀 보장이 힘들기 때문이다. 또 상관의 부당한 침해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불복종’으로 비칠 수 있어 일반 사회보다 더욱 말하기 어렵다. 때문에 가해자가 상관인 경우 더욱더 적극적인 대응과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이 10월 28일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군 검찰에 입건된 현역 군인의 성범죄 사건은 2010년 338건, 2011년 426건, 2012년 453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지만 군 검찰의 기소율은 2010년 44.7%, 2011년 41.3%, 2012년 38.4%로 매년 감소하고 있으며, 올 상반기는 31.5%로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또 ‘최근 5년간 군 내 여군이나 여 군무원이 피해자가 돼 처리된 사건 현황’에서 지난 5년간 총 110건의 사건이 군 검찰에 입건됐지만 이 중 62건, 전체의 56.4%의 사건이 ‘공소권 없음’이나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기소유예’ 등의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김엘리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는 군대 내 성범죄나 고충 처리를 위해 “민간과 군이 함께 군 조직이 갖고 있는 위계질서를 넘어설 수 있는 독립성을 갖춘 협력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단체의 활동가나 상담가 등 전문가가 군과 함께 사건을 조사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독립적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 군이 과학화 등으로 스마트한 군인을 지향하지만 여전히 전투 중심의 강한 체력을 갖춘 군인을 주요한 군인상이라 여기고 있어 여군은 신체적으로 취약하고 능력이 결핍된 사람으로 성적 대상화되기 쉽다”고 우려했다. 그는 “군대가 전투 중심에서 평화 유지와 치안 유지, 지역주민 보호 등 평화를 만들어가는 운영자, 중재자로서 역할을 넓혀간다면 여성이나 성소수자와의 관계가 덜 폭력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희 / 여성신문 기자 (ksh@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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