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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오늘,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그들과 함께”

2011.06.21 16:55

충북여세연 조회 수:19458 추천:45

“오늘,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그들과 함께”
‘인권’으로 접근한 이주여성운동 10년…“가정폭력 피해자·출산도구 이미지 바뀌어야”
“한국문화 강요하면서 ‘다문화 가정’이라니 차라리 ‘국제결혼가정’으로 부르자”


▲ 한국염 대표가 이주 여성들이 만든 소품과 그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 장철영 기자
20여 년 전인 90년대 초반, 독일에 남아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마흔이 넘으면 이제까지 배운 것을 삶에서 실천해야 할 때”라는 생각에 귀국했다. 이후 “오늘, 이 땅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이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쉼 없이, 자기 안에서 치열히 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이렇게 민중신학에 여성운동의 정체성이 더해져 이주 여성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역사 쓰기가 시작됐다.

이주 여성의 문제를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해 풀어내고 있는 한국염(62)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이 부분에서의 기여를 인정받아 2007년 비추미 여성대상 해리상부터 올해 3월 유관순상에 이르기까지 숱한 상을 받았지만 이들 이주 여성 문제에 대한 갈증은 나날이 심해져만 간다. 그는 7월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회의에 참석, 한국에 온 이주 여성들의 체류권과 안전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할 계획이다. 한국 정부에 국제사회의 압력이 가해져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특히 올해는 10월이면 센터 발족 1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나의 정체성은 민중신학과 여성운동”

14일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자리한 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한국염 대표는 “결혼을 통해 한국에 정착한 이주 여성들의 이미지가 가정폭력 피해자, 위장결혼 당사자 그리고 (초저출산 사회) 출산의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이들의 인권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한편으론 매우 곤혹스럽다고 토로한다. “대중매체 등을 통해 너무 센세이셔널하게(선정적으로) 부각되면서 말없이 잘 살고 있는 다른 다문화 가정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가”란 딜레마 때문이다.

“베트남어 교실에 온 한 한국 남성의 얘기다. 사람들이 처음엔 자신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쓰다가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것을 아는 순간 ‘해라’ 식으로 자연스럽게 하대하는 투로 바뀌는 일을 당하면서 몹시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엔 ‘한국 여성과 결혼 못 하는 남성’이란 차별적 시각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래서 이참에 그는 왜 하필 ‘다문화’냐는 용어 문제를 제기한다. ‘다문화’란 말 자체가 그 집안의 문화가 다양하다는 뜻일진대 한국 문화만 강요하려 드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

“다문화 가정 사람들조차도 이 ‘다문화’란 말을 싫어한다. 차라리 ‘국제결혼 가족’이 더 낮지 않으냐는 말도 종종 한다.”

그는 여성신학의 구심점 역할을 한 한국여신학자협의회를 맡아(사무총장) 전방에서 뛰어왔다. 거슬러 올라가면 “신학교에 가고 나서야 여성은 제도적으로 목사가 될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내가 최초의 목사가 되리라” 다짐한 데서 그 싹은 예비돼 있었다. 한신대에서 만난 고 이우정 교수도 롤 모델이 됐다. 고 이우정 교수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표에 이르기까지, 또 민주화운동에서 기생관광 반대운동, 여성평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인권·여성운동의 최전방에 섰던 스승이다. 그는 1980년 여신학자협의회 발족의 구심점이 됐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1973년 신학교 졸업 후 79년 목사고시에 합격하고도 17년이 지난 1996년이 돼서야 목사 안수를 받았다. 남성이 목사 안수를 받는 평균 기간의 3배 이상을 ‘우회’했다. 그러나 이후 그의 보폭은 거침없었다.

“강성으로 소문 나 아무도 나를 목사로 초빙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외국인 이주 노동자 문제를 접하면서 만든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를 만들면서 청암교회 담임목사로 있던 남편을 그쪽으로 쫓아 보냈다(웃음). 이렇게 교회를 맡은 것 역시 여성운동과 같은 맥락이라면 맥락이다.”

현재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그의 남편은 최정의팔 목사다. 어머니 성 ‘정’을 이름에 함께 넣어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에 동참할 정도로 극진한 페미니스트다.

이주 노동자 문제는 우연히 이들 부부의 손에 떨어졌다. 민주화운동·노동운동을 하던 이들의 집합지로 익히 알려졌던 청암교회로 1996년 성남 양말공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 8명이 피신을 와 도움을 요청했다. 그중 7명이 여성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조차 공장 밖을 나가지 못하게 감금당하고, 체불임금에 성희롱까지 당해왔던 이들이었다.

6·25전쟁 이후 재건학교가 들어섰던 100여 평의 대지를 기반으로 같은 터에 있던 봉제공장 한 칸을 빌려 시작했던 청암교회는 그동안 도시 빈민이 태반인 교인들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탁아방, 공부방이 함께 들어서는 규모로까지 확장됐다. 그러다보니 당시 80만원의 월세가 벅차 은행 빚과 전세를 끼고 2층 가정집을 사서 교회를 다시 열게 됐다. 그 1년 후 중국인 노동자 피신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탁아방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를 열었다. 그리고 2001년 센터 부설로 ‘외국인이주여성노동자의집’을 설립했다. 지금의 이주여성인권센터의 첫 단추였다.

“남편을 비롯해 당시 외국인 노동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성인지적 시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도 페미니스트로 소문난 사람인데도 태생적 한계는 있었다. 내 입장에선 같은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룰 때 특히 여성에 대한 접근 방식이 영 맘에 안 들었다.

중국인 노동자 교회 피신 사건

계기로 이주 노동자 문제에 천착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모든 센터들이 주로 남성 위주로 운영돼 쉼터조차도 여성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막말로 남성들은 한겨울만 빼면 노숙해도 되는데, 여성들은 어디 그런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주 여성 노동자들을 집으로 데려와 재우면서 이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는 독일 세계기도일에 여성쉼터를 위한 기금 3000만원을 요청했다. 2년 걸려 3000만원이 도착했을 때는 전세 값이 뛰어올라 여기에 자신의 전세 값 2000만원을 더해 5000만원을 종잣돈으로 전세를 끼고 2층 독채를 얻었다. 이렇게 한국 최초의 외국인 여성 노동자 쉼터가 생겨났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가정폭력을 당해 도망 나온 결혼이주 여성들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이들을 보면서 “말이 결혼이지 24시간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 또 다른 삶들을 접하게 됐다. 자연히 그의 활동의 중심축은 ‘인권’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2004년 센터 사무실을 지금의 숭인동으로 옮기면서 여성단체연합,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주요 여성단체 행사에서 마주친 지은희 당시 여성부 장관에게 끈질기게 이주 여성에 대한 인권 조치의 중요함을 역설했다. 그 결과 지 장관은 태평양화학으로부터 연 2억원씩 5년간 10억원의 기금을 여성부에 유치했다. 이렇게 2005년 결혼이주 여성 사업의 첫삽을 뜨게 됐다. 센터가 용역을 맡아 전국 6개 여성단체와 네트워크를 맺어 한국어 교육과 함께 모성보호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 그러면서 전국에 산발적으로 거주하는 결혼이주 여성들의 인권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2006년 4월 26일’을 뚜렷이 기억한다. 이날 대통령 국정과제 중 하나로 결혼이민자와 그 가정의 사회통합지원정책이 발표됐다. 이주 여성 상담을 위한 콜센터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설치를 근간으로 하는 지원책은 이후 결혼이주 여성 관련 정책의 기조가 됐다. 상당 부분이 그가 마스터플랜까지 다 짜서 여성부에 건의한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그로선 아쉬운 점이 많았다.

“애초에 결혼이주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이주 여성이 동등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원 정책을 원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철저히 결혼이주 여성 가족 중심의 정책들이었다. 더구나 지자체로 가서는 저출산 대책 차원에서 다문화 가족 정책이 실행됐다.”

상처투성이 이주 여성의 얼굴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나마 참여정부 시절 가정폭력방지법 개정 과정에서 ‘외국인 여성’이란 말이 들어가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2007년 여성가족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정식으로 쉼터를 개소했다. 이전부터 근근이 운영하던 쉼터에서의 경험을 살려 아예 파출소 뒤에 쉼터를 마련했다.

“폭력 남편들이 교회, 심지어 우리 집에까지 강제로 밀고 들어와 방바닥에 칼을 꽂고 위협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쉼터를 아무 데나 얻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현재 그가 가장 다급해하는 일은 긴급예산 지원이다. 현재 쉼터에도 중국,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 여성 2명이 들어와 있는데, 한 여성은 남편에게 눈을 맞아 실명 위기이고, 또 한 여성은 코뼈가 내려앉아 긴급 수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정한 1인당 비용 50만원으로 이를 충당할 수 없기에 속이 탄다.  

2년쯤 후 은퇴를 생각한다는 그도 가장 걸리는 것이 센터의 향후 생존이다. “이제까지 돈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니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은 비웠어도 말이다.

“운동을 하면서 경험을 통해 큰 원칙을 세웠다. 교회 초기, 장충동 여성평화의집 여신학자협의회에서 낮엔 일하고 저녁엔 교회로 들어와 사역하면서 탁아방 엄마들을 1년 넘게 만났는데도 그들은 마음을 안 열어줬다. 후에 우리 전세 자금 2000만원을 교회에 집어넣고 교회 안에 사택을 마련, 거실·주방·방을 겸하는 원룸식 생활을 했다. 장롱으로 칸막이를 만들고 남편과 나, 지금은 서른이 된 딸 이렇게 세 사람이 한 쪽을 쓰고, 장롱 저편은 당시 중학생이던 큰아들이 썼다. 밤에는 아들이 자는 방, 낮엔 교회 사무실을 겸했다. 이렇게 석 달을 살아보니 드디어 엄마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여기서 목회자로서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의 여건이 그들과 똑같아져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센터를 나서는 순간까지 그는 “우리 사회가 진정 성숙한 사회라면 이주 여성을 개인으로 봐야지 ‘가족’에 끼워놓는 시각으로 보면 곤란하다”며 “가족 이전에 이주 여성의 인권과 안보부터 고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주 여성의 자화상은 우리 한국 여성들의 자화상, 상처투성이 얼굴을 보기 괴롭다고 언제까지 외면하며 ‘나’를 부정할 것인가. 그는 보통 한국 여성인 내게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겨주었다.

1139호 [특집/기획] (2011-06-17)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pleu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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