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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사퇴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제일의 근거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기는커녕 기소조차 되지 않은 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검찰의 음험한 피의사실 공표로 인해 곽 교육감이 여론재판에 올려지는 건 부당하다는 논리로 확장된다. 형식적인 법 논리로만 보면 토 하나 달 수 없는 지극히 정당한 주장이다. 그래서 존중한다. 2억원을 전달했지만 후보 단일화 대가는 아니라는 곽 교육감의 주장에 할 말이 적지 않지만 어차피 최종판단은 법원이 내리는 것이니까 논외로 하겠다.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다. 법보다 더 크고 더 근본적인 문제다. 곽 교육감의 정당성이다. 곽 교육감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자신은 “법학자이자 교육자”라며 법으로부터 올바름을 배웠고, 교육으로부터 정직을 배웠다고 말이다. 이게 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곽 교육감은 정당성을 잃었다.

곽 교육감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박명기 교수에게 2억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올바르지도 않고 정직하지도 않은 방법을 썼다. 지인을 통해 3단계에 걸쳐 2억원을 전달하는 변칙을 썼다. 그가 “법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올바름과 정직을 실천하고자 했다면 세정당국이 증여세를 징수할 수 있도록 투명한 전달 절차를 밟았어야 하는데도 우회적인 방법을 썼다. 곽 교육감의 주장처럼 뜻은 선했는지 모르지만 방법은 선하지 못했다.
잃은 건 곽 교육감 개인의 정당성만이 아니다. 더불어 우리 사회 게임룰과 서울시교육청 행정의 권위 또한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수많은 사람이 목도했다. 자식 통장에 수천만원의 돈을 넣어줬다는 이유로, 결혼하는 자식에게 전셋집 얻어줬다는 이유로 인사청문회에서 난타당한 고위 공직자 후보를 숱하게 지켜봤다. 하지만 아무도 난타를 가하는 국회의원들을 욕하지 않았다. 그들의 난타가 엄정한 잣대에 입각해 취해지는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욕하는 게 아니라 격려했다. 비위를 저지른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을 때도 문제삼지 않았다. 공표된 피의사실에 근거한 요구였는데도 오히려 그 주장이 옳다고 여겼다. 이런 마당에 곽 교육감과 옹호세력이 ‘아무 문제 없다’고 강변하면 우리 사회의 게임룰은 어떻게 되겠는가.

수없이 들었다. 곽노현 교육감이 선거 과정에서, 취임 준비 과정에서, 나아가 취임 후에 수없이 하는 말을 들었다. “부패에 대해서만큼은 강성”이라는 말, “반부패 인권교육감으로 남고 싶다”는 말,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부패 비리는 교육행정·학교행정이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음을 보여준다”는 말을 귀 아프게 들었다. 실제로 추진하기도 했다. 교육감 취임 한달여 만에 인사·뇌물사건에 연루된 교장·교감 등 26명의 교원을 해임·파면했다. 곽 교육감이 해임·파면한 교장·교감 중에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따라서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했어야 하는데도 반부패 방침에 입각해 단호하게 징계했다. 이렇게 했던 곽 교육감이 자신의 변칙행위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 서울시교육청 행정이 어떻게 되겠는가.

문제의 본질은 이중 잣대다. 일관성을 잃어버림으로써 정당성마저 잃어버리는 게 문제다. 정당성을 잃어버림으로써 사회적 판단 잣대와 게임룰을 해체해 버리는 게 문제다.

그런데도 강변한다. 곽 교육감의 ‘버티기’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왜 진보세력만 도덕성의 굴레를 써야 하느냐고 항변한다. 보수세력은 뻔뻔하게 죄 짓고도 잘 버티는데 왜 진보세력은 멍에를 짊어져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이중 잣대를 운위하고 도덕성을 운운하는 건 순진함을 넘어 결벽증에 가깝다고 혀를 찬다.

전형적인 진영논리다. ‘너희 편’과 ‘우리 편’을 가른다는 점에서 진영논리일 뿐 아니라, 게임룰이 아니라 힘으로 싸우자는 점에서 대결논리이다. 반칙과 변칙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설정한 게임룰마저 부수는 무절제한 논리다.

곽 교육감에게 고언을 드린다. 진영에 의지하지 말기 바란다. “법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오로지 정도만을 걷기 바란다. 곽노현 교육감이 걸어야 하는 정도는 ‘사퇴’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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