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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업무 특성 고려해 산재보험 적용해야”

2011.10.12 23:38

충북여세연 조회 수:24073 추천:38

“여성의 업무 특성 고려해 산재보험 적용해야”
건강은 ‘삶의 질’의 문제
젠더 관점에서 일과 건강문제 다뤄야

▲ ‘일과 건강’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는 정진주씨.지난 9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가톨릭간호대학에서 열린 여성신문 주관 제4차 GnP(Gender and Perspective) 포럼은 일하는 여성들의 건강문제에 있어 젠더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산재보험에 있어서의 성맹적(젠더블라인드)인 허점은 이날 회의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남성·대규모 사업장·제조업 중심의 산재보험 적용은 자연스레 여성을 사각지대로 내몰았다.

이날 기조발제를 맡은 정진주 사회건강연구소장은 “건강은 사회권의 하나이며 ‘삶의 질’의 문제로 건강 형평성이 중요하다. 건강에 미치는 예방요인(risk factor)이 같은 직업 내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다르게 나타난다”며 “여성노동의 위치는 비정규직 등으로 불안정하고 업무의 이해가 낮다. 여성의 일과 건강에 관해서는 연구 자체가 안 돼 있다. 가장 오래된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에 있어서도 업무 관련 위험요인이 사고나 부상 등 남성 중심적인 사례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산업구조의 재편이 서비스업으로 전환되고 있어 직종 중심의 안전보건 관리가 필요하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반복 노동이나 감정노동이 많은 업무 특성이나, 근력과 신장 등 신체적 조건의 차이에 대해서는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도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남녀가 같은 일을 하더라도 신체적 차이 때문에 건강에는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선미 여성학자는 여성노동의 업무 특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례를 생생히 설명했다. 그는 “옌볜에서 온 중년의 여성 노동자 한 분은 반신불수가 된 노인들을 위한 돌봄노동을 하고 있다. 80㎏이 넘는 거구의 할아버지들을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 이분은 ‘허리가 나갈 지경’이라고 호소한다”며 “감정노동은 더 심하다. 욕하고 때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수모도 엄청나지 않겠나”라며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고충을 밝혔다.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입법심의관도 “경마장의 매표소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은 평균보다 10% 이상 높다. 이는 반복성 노동이 많은 여성 집중 산업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하며 “이들도 폭언과 폭행, 성희롱에도 자주 노출되지만 서비스직의 특성상 무조건적인 친절을 강요당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덧붙였다.

발표에 이어 조주은 국회 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건강에 관한 개념, 건강권의 문제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근대적 담론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심리적, 사회적, 여가적 건강, 젠더의 관점 등 새로운 건강내념이 논의돼야 한다”고 토론에 불을 붙였다. 김은주 소장도 “생산성을 바탕으로 하는 일·노동의 정의를 다시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하는 여성 중에는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아 더욱 문제다. 비정규직 여성들에게 산재보험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정진주 소장은 “회사 입장에서는 3년에 한 번 산재보험료를 갱신할 때 최대한 보험금 상승분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어지간한 일은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산재보험의 복잡한 신청 절차와 주변 동료의 진술을 확보해야 하는 등의 비합리적인 신청 요건이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산재보험을 신청하더라도 승인을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산재보험의 승인율은 남녀 구분 없이도 매우 낮다. 더욱이 만성적·여성 집중적 업무에 대한 연구 및 역학조사의 부족은 일하는 여성들이 산재보험을 신청하더라도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지 못해 보험 혜택을 못 받을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논의는 ‘성희롱도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까지 확장됐다. 변혜정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소 상담교수는 “호주, 미국 등의 외국에서는 성희롱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입증이 힘든 성희롱의 경우 사용주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발제자를 비롯한 토론자들이 산재보험에 있어서 성차별적인 요소를 줄이기 위한 참신하고 다양한 제언들을 제시해 눈길을 모았다.

정진주 소장은 “산재보험의 전체 자료 성별분리 통계의 마련과 다양한 위험요인에 대한 교육과 연구”를 무엇보다 시급한 선행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산재보험의 판정 기능을 독립해 보험지급 기능과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별영향평가센터장은 “예를 들어 무거운 나무 대신 알루미늄으로 사다리를 만들었더니 남녀 구분 없이 모두가 윈윈할 수 있었다”며 “남성을 위해 제작된 도배나 농사 등의 작업 도구를 여성에 맞게 인체공학적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절실하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이날 포럼에는 새로 GnP 위원으로 위촉된 강선미 여성학자와 이날 발제를 맡은 사회건강연구소 정진주 박사를 비롯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경희 성별영향평가센터장,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 변혜정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소 상담교수, 조주은 국회 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입법심의관이 참여했다.

▲ 제4차 GnP 포럼에 참석한 토론자들 모습. 왼쪽부터 차인순, 조주은, 김경희, 김은주, 변혜정, 강선미씨(직함생략)

김남희 / 여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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