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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푸른숲 대표 “엄마들이 우리 책의 미래를 쥐고 있어요”

2012.10.08 11:41

충북여세연 조회 수:32316 추천:30

초3만 되면 책 읽을 시간 없게 만드는 우리 교육 현실부터 바꾸어야

▲    ©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푸른숲’은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는 출판사 중 하나다. 이 푸른숲을 이끄는 김혜경(59·사진) 대표가 1991년 출판사를 시작하고 정신없이 달려온 지 20여 년 만인 올해 초부터 ‘안식년’이란 파격 휴지기를 갖고 있다.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란 의구심이 들지만 정작 그는 이 1년여의 재충전을 통해 책의 미래에 대해 새롭게 정리하고, 다시 희망을 가지고 연말 복귀를 준비 중이다. 추석 직전인 9월 28일, 서교동의 한 한적한 카페에서 어렵게 짬을 낸 그와 마주 앉았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국민 독서의 해’. 때는 독서가 절정에 치닫는 가을이지만, 그와의 대화엔 우려와 기대가 날실과 씨실처럼 교차했다.

쉼 없이 달려온 20년 끝에 안식년… 책의 미래 다시 점검

“몇 년 전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평소에 화도 잘 못 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막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쉬면서 답을 찾고 싶었다. 전문가에게 어떻게 하면 잘 쉴 수 있는지 상담까지 받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원인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종이 책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출판 시장은 사재기와 다양화된 홍보 방법으로 교란돼 있고, 이제까지 푸른숲이 해오던 방식대로 이상한 짓 안 하고 제대로 계속 하고 싶은데 어떻게 갈지 길은 막막하고… 답이 없었다. 결국 쉬는 것은 내게 굉장히 도움이 됐다. 처음 몇 달간은 거의 아무것도 안 하고 사람도 안 만나고 그냥 가만히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망중한이었지만 출판계의 현실은 삭막했다. 그래서 쉬면서도 안타까움과 걱정이 밀려오기도 했다. 출판인들이 수년간 염원했던 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이 문화부 산하 기관으로 7월에 출범했지만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출판인들이 수십 년 만에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여야 했다. 애초 출판계에선 초대 진흥원장으로 김 대표를 희망했었다.

“(2005년 초 한국출판인회의 임기 2년의 4대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직후부터) 문화부에 진흥원 설립을 건의, 출판인들과 함께 초기부터 뼈대 만들기 작업을 해왔고, 이를 통해 방향도 다 정리돼 있는 상태였는데, 이렇게 진흥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문화부가 최근 발표한 5개년 계획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손에 잡히는 것이라든지 예전과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어 공감할 수 없고, 그래서 착잡하다.” (문화부가 발표한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2~2016)’엔 출판 수요 창출 및 유통 선진화, 우수 출판 콘텐츠 제작 활성화, 전자출판 및 신성장동력 육성, 글로벌 ‘출판 한류’ 확산, 출판문화산업 지속성장 인프라 구축 등 5개 과제가 제시돼 있다. 출판계는 이에 대해 도서정가제를 비롯한 유통 질서 확립 등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엔 한참 부족한 수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 대표가 가장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나날이 두드러지는 독자의 고령화 추세. 어느 순간 더 이상 1020 독자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는 악몽도 꾼다. 배경엔 부조리한 교육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이 초등 저학년까지는 책을 읽는데, 3학년만 넘으면 책 읽을 시간 없이 선행학습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 교육 현실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 탓에 지식도 살아 있기보다는 암기해 창고에 쌓아놓는 경향이다.  책을 안 읽으면 생각의 깊이, 공감 능력, 창의력이 만들어질 기회가 없어지고, 이런 것들로 야기되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도 점점 심각해진다. 그나마 짧은 지식마저도 IT시대의 영향으로 가치 있는 문장, 가치 있는 지식의 깊이 여부를 따져보기도 전에 얼른 보고 내버리는 행위가 반복된다. 감성을 개발하고 느끼고 인식하는 기능은 점점 사라지고 단순히 쓰레기 버리듯 하는 딜리트(delete) 현상만 되풀이되니 피로감만 늘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더 품위 있는 인간으로서의 정서적 안정감에 대해 고민이 거듭되면서 위기감도 커졌다.”

스마트폰, 책 안 읽는 1020… 정서불안 심화될 것

‘관찰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엄마들의 역할에 주목하고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안식년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우리 출판계의 열쇠는 엄마들이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만난 이어령 선생도 그 연세에 어머니가 자신에게 책을 읽어준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계셔서 감동이었다. 나 역시 어머니가 나와 남동생에게 매일 저녁 당초무늬로 장식된 계몽사 전집을 읽어 준 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이 바탕이 돼 이 길로 들어서게 됐을 것이다(그는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졸업 후 당시 고 정주영 회장이 현장에서 뛰던 현대건설의 비서실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육아문제로 퇴직했다가 후에 아산재단에 경력사원으로 복직했고, 1991년 도서출판 푸른숲을 인수, 오늘의 출판계 리더로 성장했다). 책을 통해 정서와 상상의 세계가 풍요해졌고, 스스로 행복해졌다. 책을 사랑하게 되고, 문학소녀가 되고, 이것이 출판사업으로 이어졌다. 나 역시 워킹맘이라 다른 것은 못 해줘도 두 아이에게 책만은 실컷 읽어주었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과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가 지원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말 끝에 “엄마 노릇은 누구나 처음 해보는 것이기에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책”이라고 역설했다. “독서력이 생기면 자연히 그밖의 모든 역량도 커지게 마련”이어서 “최첨단 스마트 시대에도 부모들이 시행착오를 많이 겪다 보면 다시 책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 그가 가지는 희망의 증거는 한국의 상당히 높은 독서력과 수준이다. 그 나름 이를 민주화 세례를 받은 386·486세대와 IT 붐을 타고 탄탄한 전문 CEO가 된 세대의 공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특히 후자인 ‘CEO세대’에 주목한다.

“이들이 말하자면 경영학이나 리더십, 인간관계, 자기계발서 등의 실용서적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다. 근 10년간 이들이 주도하는 출판 시장이 형성돼 왔는데, 이들 분야만으론 역부족을 느껴 여기에 인문학 열풍까지 가세하게 됐다. 이 실용적인 역량은 엄청나서 후에 상당히 딱딱하고 철학적인 ‘정의란 무엇인가’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데올로기보다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데 주목하며, 헝그리 세대를 넘어섰기에 현명하고 균형감이 있는 독자들이다. 이들의 독서력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의 국력으로 연결될 것이라 믿는다. 이제 문제는 그 다음 세대의 독서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는 최근 글의 힘을 실감하는 체험을 했다. 친한 친구가 작고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사흘간 친구를 문상하면서 느낀 점이 있어 슬퍼하는 친구 남편에게 종이와 펜을 건네주며 아내에게 못다한 얘기를 써보라고 권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누군가를) 보내는 편지”였다. 남편은 편지를 작성해 장례식장에서 읽고 아내의 관에 그 편지를 함께 묻어주었다. 편지는 남편의 상심한 마음에 큰 위로가 됐다.

인간을 성장시키는 ‘글’의 힘 간과하지 말기를

“일상생활 속 소중한 관계에서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글로 정리하고 마무리해 전달하면 서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례를 서 본 적이 있는데, 출판사 노총각의 결혼식장에서였다. 내 주례의 조건은 예비 신랑 신부가 결혼하기 전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때 상처를 받고 또 어떤 걸 가장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솔직하게 써오는 것이었다. 둘 다 편집자들이어서 그런지 글로 써오니 정말 제3자인 나조차도 정리가 되더라(웃음). 둘째 아이가 결혼할 때도 똑같은 것을 주문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말 글의 힘을 잘 알겠더라. 주위에도 전파하고 싶은 운동이다.”

수년 전 그는 책은 변하지 않을 가치를 담는 명품이기에 정치 관련 서적은 ‘출판 불가’라는 원칙을 밝혔었다.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정치 관련 책(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닥치고 정치’와 주진우 시사인 기자의 ‘주기자: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을 냈다.

“그들이 정치적 야망으로 책을 도구화할 위험은 별로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그 책들로 인해 우리 사회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실감했으며 좌우 양쪽 다 관심을 가져야 할 당위성을 절감했다. 출판인이라면 왜 사람들이 ‘나꼼수’ 같은 것에 열광하며 달려가는 지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 현상 이면의 이쪽저쪽을 다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역시 우리의 역할이다. 우린 독자와 함께 살아가지만 시대 속도도 야멸차게 따라가야 한다.”

그의 출판사는 몇 달 전 한 주말 드라마(‘반짝반짝 빛나는’)의 배경으로 등장해 관심을 모았었다. 출판사를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이 인기 드라마의 출판사 촬영을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그가 허락한 것은 딱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책에 대한 사랑과 신념, 이를 통해 책의 가치를 좀 더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제작진은 우리 편집회의에도 참석했고, 우리도 수시로 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남자 주인공이 연인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사재를 털어 어려운 이웃에게 책을 선물하는 장면이 탄생했다. 드라마로 인해 책이 얼마나 우리 삶에 소중한 존재인지, 책을 만드는 게 얼마나 정제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지를 대중이 공감할 수 있도록 극을 이끌어가자는 것이 우리의 조건이었는데, 호응이 좋아 보람을 느꼈다.”

전자책의 급증 속에서도 인문학적 깊이가 있는 책은 종이 책일 수밖에 없기에 전자책 시장의 확장엔 한계가 있다는 낙관, 하나의 좋은 책이 또 하나의 좋은 책을 탄생시키고 이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책 시장이 커진다는 확신, 배낭을 둘러메고 아이들과 열심히 책을 고르는 부모들을 보며 느끼는 무한한 존경심. 그와 헤어지면서 우리 책의 미래는 결코 암울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pleu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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