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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이 되면 내 인생은 완전히 꽃필 거예요”

2012.02.06 10:51

충북여세연 조회 수:65311 추천:30

춤꾼 홍신자 “춤에도, 사랑에도 ‘정년’은 없다”
그는 여러 가지로 경이로운 사람이다. ‘시간’이란 기본적 인간 조건도 그를 비켜가며 예상을 뒤엎는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 ‘춤추는 구도자’로 불리는 그와의 대화는 선문답 같아서 말 중간 중간 행간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한다. 바로 세계적인 전위무용가 홍신자(72·사진)씨 얘기다. 2010년 10월 고희의 나이에 한 살 연하의 독일인 교수 베르너 사세 함부르크대 명예교수(한국학)와 장장 12시간에 걸쳐 축제 같은 결혼식을 올려 세상을 놀라게 한 그는 이후 제주 한림에서 바다와 함께 1년간의 신혼을 보내고 지난 연말 그가 1993년 경기 안성 죽산에 설립한 ‘웃는돌’로 돌아왔다. 2월 초 2박3일간의 생활명상 워크숍과 이어서 35년 만에 인도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노년, 그의 화두는 비움을 통한 생활 속 명상과 그를 통해 얻어지는 치유와 평안에 쏠려 있었다.

동적 춤 명상 생활화… “맘과 감성 열면 누구나 무용가”

“명상은 비워서 나를 치유하는 거예요. 우리의 몸과 마음이 꽉 차 있어 스트레스를 받고, 그 때문에 병이 생기죠. 고정관념을 비롯한 예전의 쓸데없는 기억들, 미래, 욕심 등을 우리 몸에서 빼내면 몸이 정화되고 순화되죠. 여기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어요. 명상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명상 프로그램이 진행될 동안은 잘 따라하다가도 일단 프로그램이 끝나면 대개는 이를 싹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버리죠. 그래서 명상적인 생활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즉 어떻게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걸으며 명상을 하나 생각하고 실행해야죠. 사람들은 몇 구절로 표현되는 노하우, 즉흥적 해답만을 원하는데, 이는 직접 경험해봐야 체득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그의 명상은 그의 춤 세계만큼이나 흐르듯 자유롭다. 가부좌 틀고 엄숙히 앉아도 머리로는 온 세상을 다 돌아다니며 딴짓을 할 수 있는 건데, 그게 뭐 명상이냐고 반문한다. 정적 명상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칫 몸과 마음이 따로 헤맬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춤과 조합한 동적 명상을 제시한다. 특별한 룰 없이, 엄숙하지 않게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흐름에 몸을 맡긴다. 무용가가 아닌 보통 사람은 춤에 대해 고정관념이 강한데, 이 벽을 깨고 몸과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 명상의 첫걸음이다. 이를 두고 그는 “기본기는 따로 없다. 마음만 오픈돼 있으면 그게 바로 기본이다. 다 마음의 문제”라고 요약한다. 그리고 감성의 문제다. 이 감성만 솔직하게 표출할 수 있다면 50대도 명상뿐 아니라 이를 통한 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의 춤 명상 프로그램은 3분의 2가 여성으로 채워지지만 점차 남성도 증가하는 추세다. 고정관념이 붕괴될까봐 자기 노출을 유난히 두려워하는 남성이야말로 명상을 통한 치유가 절실하다.

“비우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어요. 고정관념 때문에 노예가 되는데, 이 고정관념을 비우면 뭐든지 다 가능한 게 인생이에요. 실제로 내가 그렇게 사니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죠.”

이제까지의 인생 여정을 되돌아볼 때 해볼 건 다 해봐서, 윤회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더라도 이를 거부할 거라는 그의 말에 부러움을 감출 수 없다. 그 연장선상엔 나이 듦에 대한 자족의 기쁨이 있다.

“욕심 부리지 않고 늘 동행하는 노년의 사랑, 평화로워요”

“몇 사람의 생을 살아본 것처럼 느껴져요. 난 60에 접어들어서야 충만한 평안감이 찾아왔어요. 돌아보면, 30대가 가장 치열하게 고통스러웠고 에너지도 넘쳐났죠. 예수, 부처도 다 30대에 절정이었잖아요? 당시 많이 헤매다가 인도로 가서 깨달음을 얻었는데, 에너지가 없었더라면 하기 힘든 일이었죠.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그런 에너지가 있는데, 이 자신의 에너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게 딴 데 낭비하고 한눈팔며 눈앞의 것에만 집착하기에 헤매는 것 아니겠어요? 어쨌든, 30대부터 50대까지 춤 세계를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니 50대 때 그것이 한층 성숙해지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60대에 비로소 내 춤 세계가 형성됐고, 70대가 된 지금 그것이 한창 성숙하게 무르익는 것을 절로 느껴요. 그래서 이젠 80이 되면 활짝 개화해서 절정을 이룰 것 같아요.”

그의 예술 세계뿐만 아니라 개인 생활도 지금이 절정인 듯하다. 그는 이를 “노년의 사랑이 아름답다. 모든 것을 비우고 욕심 없이 하니까”란 말로 암시한다.

“70에 결혼하는 것도 참 괜찮은 일인 듯싶다. 남편이 옆에 있어도 없는 듯하고, 없어도 있는 듯하고… 굉장히 평화롭다. 각자 생활을 아무 구속 없이 하다가 식사할 때, 잠잘 때 다시 만나고, 서로 케어하고 늘 동행하고.”

그와 남편은 2009년 11월 재독 화가 노은님씨의 전시회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엔 명함만 교환하던 사이였으나 우연히 만남을 거듭하면서 서로 “이 양반, 좀 다르네”라는 호기심과 호감을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게 됐다. 그가 경험한 사세 교수는 생활 자체가 고정관념과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를 두고 “뭐든지 예스맨”이라 표현한다.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 두 사람은 지난해 4월 사세 교수가 거주하는 전남 담양의 한 한옥에서 약혼식을 올리고, 이어서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전통 평양식 혼례복장을 하고 성황리에 결혼식을 치렀다. 결혼식을 10월 9일 한글날로 정한 것은 사세 교수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독일어로 처음 번역한 독일인 최초의 한국학자로 40여 년 한국과의 인연 속에 2006년 대학 정년퇴임 후 아예 한국으로 이주하는 등 유난한 한국 사랑 때문이었다. 화가로도 활동하며 지난해 수묵기법으로 한국의 자연을 화폭에 담아낸 전시회를 열어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사세 교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