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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식 폭력과 최철원식 폭력

2011.09.03 01:48

충북여세연 조회 수:33695 추천:29

잡스식 폭력과 최철원식 폭력

자본주의란 궁극적으로 폭력 그 자체입니다. 대다수 피고용자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무조건 고용을 갈구하고, 해고를 두려워하고, 고용관계에 매달려야 하는 이유는 결국 무엇입니까? 한국의 경우에는 고(故) 최고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촤악의 경우에는 실직자, 해고자 등이 굶어죽는 일도 일어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고, 그나마 굶어 죽는 빈민이 없는 유럽 같은 경우에는 생필품을 구입하지 못하고 휴가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이등시민’인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즉 체제로부터 경제적인 타격을 입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실업자들을 굶겨 죽이기도 하는 한국이나 일본에서의 ‘생명 박탈’이든 유럽 복지국가에서의 ‘풍족한 삶의 박탈’이든 우리를 ‘임금 노예(wage slave)’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무언가를 박탈한다는데 대한 공포’입니다. 공포에 의거하는 체제는 폭력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데 폭력의 양상은 식민지 특유의 반쪽짜리 자본주의와 파시스트에 준하는 정권의 뜻에 의해 급격하게 선진국과 비슷한 ‘야수’로 성장한 대한민국과, 주요 선진국 사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폭력성은 - 적어도 그 사회 안에서는 -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고 깊이 내면화돼 있는데다가 ‘합리적 절차’와 ‘평등한 시민’ 간의 친절로 잘 포장돼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가장 거친 사업가’로 악명이 높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봅시다. 그가 직원과 임원을 ‘즉석 해고’한 이야기나 자기 앞에서 감히 칠판에 어떤 설명글을 쓰려는 부하직원에게 분노를 터뜨렸다는 일화 등은 유명합니다. 그는 아집이 강하고 자신의 권력을 무자비하게 과시하기를 매우 좋아하는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예컨대 스티브 잡스가 그 회사 빌딩 앞에서 일인시위하는 해고자에게 ‘매값 폭행’을 감행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맞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잡스와 최철원 사이의 차이라면, 잡스가 제도적 장치(경영자의 무조건적 해고권 등)를 이용 (내지 악용)하여 폭력적인 권력 행사 정도만 할 수 있는 반면, 최철원이 그 어떤 제도적인 매개체도 없이 ‘아랫사람의 신체’를 무조건 폭행해도 되는 것으로, 즉 자신이 적어도 한순간 동안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즉, 잡스의 폭력성이 어느 정도 제도화돼 있다면 최철원의 폭력성이 직접적이며 물리적입니다. 부하 (또한, 과거의 부하, 또한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의 신체를 돈 주고 소유물처럼 폭력적으로 이용해도 된다는 그의 생각을 그에게 집행유예형을 내린 법원, 즉 대한민국의 공권력까지 뒷받침해주고 있으니 무슨 거리낌이 있겠습니까? 잡스의 요구사항(효율성의 최대화, 지시 숙달 등등)을 수용하면 그가 휘두르는 제도적 폭력의 무기, 즉 해고를 면할 수 있겠지만, 최철원들의 무리가 휘두르는 물리적 폭력과 폭언의 무기는 아무리 몸을 낮추어 많이 굽실거려도 피하기가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대학원이나 대기업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아랫사람의 몸과 마음을 윗사람이 언제나 손찌검이나 폭언으로 짓밟거나 술자리에 끌고다닐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랫사람의 시간과 노동을 윗사람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한국형 인신지배’는 어떤 면에서는 참 역설적입니다. 일면으로는 이는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비공식적 행위의 영역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해당 부문의 종사자가 아니면 잘 모를 수도 있는 것이고, 잘 안 알려져 있는 만큼 사회의 공식적인 (서구적 자유주의를 표준 준거로 삼는) 윤리규정과의 충돌을 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절대 다수의 남성이 병역을 피할 수 없는 대한민국 사회의 특징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원산폭격’ 정도의 병영 내 인신지배를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거의 없을테지만, 고(故)장자연이 죽으면서 ‘31명의 악마들’의 명단을 남기지 않았다면 연예계와 무관한 대다수의 한국인이 연예계 입문자가 통과해야 할 ‘통과 의례’, 즉 소속사 대표의 폭력과 이 사회 지배층에 대한 연예인들의 술시중이나 성상납 사실 등을 과연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요?

물론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인신지배의 실체가 갑자기 노출되더라도 지배층은 하등의 불편함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의심스럽다면 아나운서가 되려는 여학생에게 “모든 것을 바치라”고 핏대를 올려도 끝내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는 강용석 의원의 경우를 잘 보십시오. 장자연을 괴롭혀 결국 간접살해한 31명의 악마 중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사법처리됐습니까? 이 땅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고용자의 인신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기에 무엇이 어떻게 폭로돼도 그들은 무사할 것입니다. 일면으로는 저들의 인신지배 관행들은 비공식 영역에 속하지만, 또 일면으로는 이 나라의 ‘관습법’, 즉 성문법보다 어쩌면 더 엄격하게 지켜지는 불문율 수준입니다. 그래서 예컨대 한국 대학의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외국학생에게 지도교수가 (강)권하는 술을 다 먹을 수 있는 만큼 주량을 키우라는 조언은, 한국어를 배우라는 조언보다 더 절실할 수도 있습니다. 언어 소통이 부족해도 상관없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위장까지도 지배하는 미풍양속(?)을 어기면 아주 큰 문제입니다.

과거의 군주들이 ‘삼대 (三代: 요, 순, 유임금 시대의 정치)의 치(治)’나 ‘백성교화’를 외쳤듯이 요즘 대통령이 ‘선진화’를 외치면서 돌아다니지만, 저들의 그 어떤 구호와도 무관하게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시대에 한국형 인신지배는 서구의 ‘제도화된, 비노골적 폭력’으로 탈바꿈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일자리 등이 불안해질수록 안정을 추구하려는 피지배자들의 심리가 강화될 것이고, 또 지배자들이 그 심리를 이(악)용해서 인신지배 강화를 통한 사적인 및 공적인 착취 강화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대학을 졸업한 뒤 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거기에다가 운동권의 힘도 남아있었던 1990년대 초반에도 국내 대학원에서는 지도교수의 성추행과 대필 강요 등이 성행했습니다. 운동권이 거의 죽고 정규직 고용도 바늘구멍처럼 된 지금은 어떨까요? 해외유학파의 지배구조 속에서 국내 대학에서 딴 학위의 의미가 많이 흐려지긴 했지만, 고용을 갈구하는 이들이 대학의 실력자들에게 아부해야 할 필요성은 훨씬 더 강해졌습니다. 불안해진 세계에서는 아부, 인신지배에 의한 개인적 추종관계 형성 등 마저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으로 느껴집니다. 신자유주의로 망해가는 사회가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공적으로 약속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인신지배 관행을 퇴치시키는 방법은 무엇을까요? 우리는 좀 과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반값등록금’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된, 전근대적인 찌꺼기가 없는 ‘무상 대학 교육’까지 강력하게 요구하는 학생운동부터 부활해야 하고, 대필요구 등을 고발할 수 있는 강력한 조교, 강사 노조가 필요합니다. 혁명적 투쟁이 아니면 ‘매값’과 ‘아나운서 되려면 다 바쳐라’ 따위의 ‘대한민국식 인신지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과거의 이 유령들을 우리가 장사지내 우리 손으로 무덤으로 보내야 하는 거죠.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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